전반적인 발전역사 개관

한국 자동차산업은 1955년 수공업형태의 시발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이래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현재 세계 5위 자동차생산국으로 부상하였다.

1962년에 처음으로 근대적 자동차조립생산이 시작되었지만 해외모델의 단순 KD조립에 그쳤고, 발전에 많은 한계를 노출하였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진정한 발전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1975년 한국 독자모델 자동차의 개발 및 생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 초 정치적 불안과 오일쇼크 등으로 한국 자동차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되어 구조조정과 합리화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수출차종 개발 등의 노력으로 1980년대 중반 한국 자동차는 북미시장에 본격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수출이 품질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1988년 올림픽 이후 자동차 내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자동차산업의 성장을 견인하였다.

1990년대 말 양적 성장에 힘입어 대대적인 설비투자 및 업체의 신규진입 등으로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아시아 금융위기 및 IMF 사태가 발생하여 주요 자동차업체들이 경영난에 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대가 기아를 인수한 것 외에 대우, 쌍용, 삼성 등의 업체가 해외업체에 인수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발생하였다.

이를 계기로 한국 자동차산업은 양적 성장의 한계를 인식하고 2000년대 들어서 품질향상을 중심으로 한 질적 성장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세계 최고 품질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엔진 및 변속기 등 내연기관 핵심기술을 확보하였고, 하이브리드자동차, 전기자동차, 연료전지자동차 등 친환경자동차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은 2000년 312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여 세계 5위 생산국으로 부상했고, 중국의 부상으로 2002년부터 6위로 순위가 추락했다

2005년 프랑스를 제치고 다시 5위에 복귀한 이후 연속으로 9년 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기업의 해외생산이 늘어나면서 국내생산은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어 세계 자동차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시기별 발전과정과 주요 정책

한국은 식민지시대에 운송업, 판매업, 정비업 등 자동차 관련산업이 시작되었고, 비록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간단한 자동차부품을 제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차체제작기술, 단순 주물 및 부품가공기술, 자동차 정비기술 등을 습득하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과 기술, 관련 종사자들은 해방 직후 초기 한국 자동차산업 형성에 필요한 중요한 물적·인적 기초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에 비축해두었던 일본군의 휘발유가 유출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미군 불하 차량이 늘어났다.

미군에서 흘러나온 부품, 휘발유 또는 밀수품 등도 대량 유통되었다. 이에 따라 중고차 개조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일제 말기 사용하던 카바이드차나 목탄차를 다시 휘발유차로 개조하는 작업과 폐차 직전의 일본 군용차에 엔진, 트랜스미션, 액슬 등 주요 기능 장치를 미군 불하차량의 부품으로 대체하여 재생하는 작업도 이루어졌다.

한편 중고차 개조용 부품수요가 큰 폭으로 늘면서 이를 위한 부품자급 노력이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이에 따라 1945년 12월 1일 서울의 자동차부품업체를 중심으로 조선자동차부분품대책위원회 와 조선자동차공업조합이 설립되었다.

정비공장이나 기계공장에서 종사하던 사람들도 일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50년 3월 29일 국산자동차부품 13개 품목을 상공, 국방, 교통 등 3 부의 합동 장려품으로 결정하고 군납을 시작하였다.

이는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최초의 정부정책이 라 할 수 있다.

국산 자동차부품 지정 13개 품목의 명세를 보면, 이밖에 기타 비 지정품목으로 엔진 밸브, U볼트, 허브볼트, 드럼, 브레이크 오일 등이 있다.

이와 더불어 사단법인 대한자동차공업협회가 창설되어 상공부장관의 정식 인가를 얻었고, 전국의 회원을 총망라하는 유 일한 자동차산업 단체가 되었다.

한국 최초의 시발자동차 생산

1955년 8월 자동차재생 및 개조사업을 기반으로 시발자동차회사가 4기통짜리의 시발엔진을 제작하였고, 9월에 이를 장착한 지프형 승용차를 생산하였다.

이때 공장은 노천에 천막을 치고 시작 하였는데 그 규모는 당시 기아산업 자전거공장의 1/10도 안 되었다.

시발자동차는 차체 및 엔진 등을 국산화하였기 때문에 최초의 국산자동차로 불리는 것이다.

엔진은 미군지프를 기반으로 하였지만, 핵심엔진부품인 실린더 헤드, 실린더 블록, 크랭크 샤프트 등은 시발자동차회사에서 자체 제작 하였다.

피스톤은 서울피스톤에서, 피스톤 링은 유성기업에서 구입하였다.

엔진부품 이외 나머지 일부 부품도 국내에서 생산되었다. 스프링은 대한철강에서, 허브휠은 하동환제작소에서 조달받았다.

그러나 엔진의 기화기나 변속기와 차축 등의 부품은 국산화되지 않았다. 이들 부품들은 주로 중고품을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중고품조립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당시로서는 많은 부품이 국산화된 차량이었다.

차체는 프레스 설비가 없어 수공으로 제작되었다. 당시로서는 철판이 생산되지 않고, 수입도 할수 없어 드럼통을 잘라 편 철판이 사용되었다.

시발자동차는 1955년 7대를 처음 생산한 후 1956년에 81대, 1957년에는 459대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말 외환부족과 휘발유 도입량 감소가 자동차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고, 이후 무리한 투자 등과 함께 일본 닛산 블루버드를 KD조립한 새나라자동차의 등장으로 1964년에 도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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